김예지

Inter-view, 2023-02-14

"90년짜리 단편 영화"

가끔 떡잎부터 다른 사람이 있다. 김예지 촬영 감독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와 나는 한 영상 동아리의 회장과 회원으로 만났는데, 이미 그때부터 전문가 포스가 났던 그녀가 어린 내 눈에도 참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난 이날에도 여전히 멋있었다. 아직 촬영 감독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라며 쑥쓰러워했지만 카메라를 통해 숨 쉬고 싶다던 그녀의 열정만큼은 촬영 감독이라 불리기 충분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건데, 느낌이 어떠신가요?

반갑고.. 너도 늙었다. 하하하. 아니 사람이 늙어야죠, 그죠? 애기 때 오동통 볼살이 빠진 거지.

충격인데요. (웃음) 제 충격은 우선 뒤로 하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소개해주세요.

저는 단편 영화 촬영, 조명 감독입니다. 콘티 짜고, 앵글 잡고. 앵글에 빛을 만들어 예쁜 영상미를 가지고 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일이라고 해야 하나? 단편 영화 외의 일들로는 영화, 드라마, 광고에서 전문 촬영 조수로 일하고 있어요.

콘티도 직접 그리는 건가요?

단편 영화는 연출과 회의를 해서 콘티를 그려나가요. 근데 저는 그림 못 그리거든요. 그래서 전 사진 콘티. 사진을 찍어서 콘티를 남기는 거예요. 아니면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아서 쓰던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요?

"충치"라는 단편 영화 찍을 게 있어요. 그래서 지금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하고 있는 중이죠. 그 감독님과도 며칠 전에 이곳에 왔었어요. 수다만 떨다 갔지만 하하하.

인터뷰 장소로도 여기서 만나자고 하셨어요. 자주 오시는 것 같은데 좋아하는 장소인가요?

만남의 장소였죠. 대학교 다닐 때 워크숍으로 단편 영화를 찍어야 했는데 그럴 때면 친구들끼리 여기 모여서 시나리오, 콘티 회의를 했어요. 특히 시나리오가 안 써지거나 아이디어가 없을 때 오면 좋아요. 일단 여기 분위기가 좋잖아요? 책도 많고 음료도 맛있단 말이에요. 하나 같이 다 마음에 들어요.

촬영 관련 학과로 가신 거 보면 어릴 때부터 촬영하는 걸 좋아했나 봐요.

어렸을 때부터 촬영하고 카메라 만지는 거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등학생 땐 드라마 PD를 꿈꿨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서부턴 영화감독을 꿈꿨어요. 사실 촬영 감독이 되게 많이 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안 시켜주기도 하고 많은 좌절을 겪어서.. 이걸 하기 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어떻게 촬영 감독이 된 건가요?

포기한 뒤로 컴퓨터 공학도 해보고 편집실도 갔다가 연출팀도 갔다가 정착을 못 하고 있었어요. 다시 촬영팀을 하는 건 겁이 나서 못 하고. 근데 연출부로 일하고 있을 때 어떤 감독님한테서 촬영을 해달라고 연락이 온 거예요. 그때 연출부 일이 너무 안 맞는 상황이었어서 어쩌다 보니 가서 촬영을 하게 됐죠.

촬영할 때 제가 레퍼런스로 뒀던 이미지가 있는데 그거랑 거의 똑같은 장면을 만들었어요. 근데 그걸 만든 순간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아, 내 자리는 여기 카메라 앞이었는데 왜 자꾸 저쪽에 가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메라로 숨 쉬고 싶었던 저에게 이게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운명이었네요.

네. 또 하필 하던 영화 끝나고 바로 준비 들어가면 되는 아주 나이스한 스케줄이었어요. (웃음) 게다가 그 감독님이 날 시켜줘서 한 번 찍었더니 되게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났죠. 덕분에 그다음 일도 잡고.

정말 그 일을 좋아하는 게 느껴지는데, 어떤가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거에 대해.

음… 행복해요. 하하하 근데 그냥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만큼 다이나믹하게 일에 대해서 천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조금만 좋아한다고 할 일은 아니고, 정말 좋아하는 일이면 가야죠. 왜냐면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못 이기거든요.




돌고 돌아 카메라 앞에 선 만큼 김예지 촬영 감독은 일에 미쳐있었다. 바쁜 탓에 인터뷰 시간도 어렵게 내어 성사될 수 있었다. 시간, 인간관계, 관심사, 고민. 그녀의 세상은 온통 촬영 감독의 시선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그녀의 촬영 감독 모먼트를 볼 수 있었는데, 예로 그녀가 찍혀야 하는 상황임에도 주변을 정리하거나 조명을 조정했다.


제스쳐 촬영을 하겠다니까 주변을 막 치우던데... 직업병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웃음) 이 카메라 끈을 다 빼고 왔어야 하는데. 너무 너저분해. 어쩔 수가 없어요, 이 거슬리는 것들. 사실 카메라에 먼지 있는 걸 깨끗하게 닦아서 왔어요. 여기 뒤에 반짝반짝 조명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조명도 들고 오려고 했어요. 너무 직업병인가?

그렇게 탄생한 제스처 사진이다.

직업병의 연장선으로 혹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아, 저거 찍는 데 진짜 고생했겠다.” 싶었던 게 있을까요?

피 터지는 장면들. 총 쏘는 장면들. 스위트홈 같은 거? 저도 피 떡칠하는 촬영장 갔을 때 힘들었어요. 만들어진 피가 엄청 끈적끈적한데 또 묻으면 안 지워져요. 폭탄 터지는 장면은 폭탄 파편이 우리한테도 떨어지니까 또 난리고. 아, 불. 불화살 장면도 찍었었는데 우리한테 날라와가지고.. 목숨 걸고 가는 거예요. 이때 생각하는 게 카메라를 위해 불화살을 막아야 할까, 내가 도망가야 할까.. 하하하

뭔가 영화, 드라마를 재미로 보더라도 이런 식의 생각이 계속 드실 것 같은데요. 최근에 보신 게 있을까요?

"올빼미" 잘 봤어요. (박수) 스폰데 얘기해도 되나요? 안 봤어요? 봐야 되는데… 그게 어마어마해서. 그 장면에 순간적으로 숨을 턱 멎게 하는 연출과 촬영. 아주 나를 갖고 놀았어요. (박수)

갖고 있는 카메라를 챙겨와 주셨어요. 각각 어떤 카메라인가요?

이거는 처음 촬영 수업 듣고 과제 하려고 산 건데 요즘엔 희귀한 센서예요. 너무 쓰기 까다로운 카메라. 색감이 진짜 특이하고 유니크해서 색 보정도 안 하고 원본으로 사진전에 내고 그랬어요.

이건 필름 카메라. 요즘 친구들 많이 빠지잖아요. 전 옛날에 좀 찍다가 필름 값이 너무 비싸서 안 찍고 두고…

이거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 새 카메라. 대학교 붙고 엄마가 선물로 사준 거라 버리지도 못하고 전시 중이에요. 짐인데… 추억으로 이런 데 나와서 한 번씩 사진 찍히고 하하하.

학창 시절, 같이 영상 동아리 활동했을 때도 있었던 카메라인가요?

그때 있었어요. 그래서 이 카메라 빌려줬을 거예요.

사실 그 당시 거제에 살았잖아요.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였다 보니 더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오래전이라.. 무려 9년 전의 허들인 거잖아요? 딱 하나는 얘기할 수 있어요. 제가 대학교 가기 전까지 거제도라는 곳에 대해 생각했던 게 뭐였냐면, 나를 제한하고 있는 되게 큰 장애물. 근데 지금에 드는 생각은 그게 장애물이 아니라 유니크한, 나만 갖고 있을 수 있는 경쟁력이 충분히 될 수 있다. 자기만의 지역 특화된 무언가를 발견하면 서울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에 비해서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져요.

이게 약간만 다르게 보면 기회예요. 요즘 유튜브도 얼마나 기회가 많아요. 양봉장 하는 분들도 나오고. 해녀도 있잖아요, 거제도도. 다 엄청난 아이디어예요. 왜 나는 그걸 몰랐을까. 내가 어렸을 때 알았으면 지금..! 하하하

지방에서 촬영 감독을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 힘이 되는 소리일 것 같아요. 이참에 촬영 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얘들아, 이 업계로 오지 마. (웃음) 내 경쟁자가 되지 말고 딴 길로 가줄래 제발? 하하하 이게 팩트입니다. 다른 데 가, 이건 내가 할게. 하하하.

진심이 느껴지는 한 마디였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훗날에라도 카메라에 꼭 담고 싶은 피사체가 있을까요?

그 촬영하는 시대에 가장 잘나가는 배우를 찍고 싶어요. 어떤 배우가 잘나갈진 모르겠는데 당대 최고의 배우를 찍는 촬영 감독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촬영 감독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닿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90살이 될 때까지 팬바를 잡고 싶어요. 그땐 1년에 한 편씩만 찍어도 되니까.








자신의 직업을 천직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그 확신을 김예지 촬영 감독에게서 보았다. 훗날 당대 최고의 배우를 찍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을 보면서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어릴 적 그녀가 감독이 될 거라고 했을 때 의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김예지 촬영 감독은 지금 허들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으면서 도착지를 향한 긴 경주 중이었다.

문득 내가 저렇게 열심히 달려본 적이 언제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자신만의 경주에 열심히 참가하고 있는가?


Editor : 김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