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띵소 | ithinkso 나무요일 대표 이욱 - 아이띵소 ithinkso



나무요일 대표 이욱
나무요일 대표 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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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요일 대표 이욱
  • 목요일이면 들러야 할 것 같은 대학로의 '나무요일'. 탁자도, 벽도, 기둥도 모두 나무로 되어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오랜 세월동안 지켜온 매력적인 대표 이욱님으로부터 그의 공간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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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이면 들러야 할 것 같은 대학로의 '나무요일'. 탁자도, 벽도, 기둥도 모두 나무로 되어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오랜 세월동안 지켜온 매력적인 대표 이욱님으로부터 그의 공간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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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

Inter-view, 2023-07-10

프로필사진

"나무요일 대표 이욱"

아이띵소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오면 함께 꼭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을 가면 모든 사람이 그곳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곳은 아이띵소 직원들이 모두 애정 하는 공간이며, 나도 너무 애정 하는 공간인 이다.

어두운 가게에 반짝이는 촛불과 곳곳에 붙어있는 메모,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인테리어… 나는 아직도 새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나무요일에서 대표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볼수록 대표님의 살아오신 삶이 궁금하여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사실 한 번에 쉽게 승낙을 받은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외적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시다며 처음엔 고사하셨지만, 끈질긴 구애에 결국 허락해 주셨다. 나무요일의 첫 인터뷰라니! 우리는 벅찬 기대감과 설레는 긴장 속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입구

안녕하세요.(웃음)

오셨어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제가 커피 좀 드릴게요.

오 저희 마시고 와서 괜찮습니다.

그래도 한 번 마셔봐요. 맛있어요.

커피사진

인터뷰를 준비하는 사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내려주셨다.
항상 뭐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마음에 또 한 번 감동했다.

꽤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운영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언제 처음 문을 여셨나요? ‘나무요일'이라는 이름도 굉장히 독특한데 특별한 뜻이 있는 걸까요?

나무요일을 시작한 건 IMF 일어난 해에 5월 말일 날 시작을 했어요. 

그런 줄도 몰랐죠. 그래서 한 5개월 동안은 되게 재밌게 살았는데 그 당시부터 3년 동안 너무 많이 힘들어서 그 해를 기억하고 싶진 않아요. 솔직하게 그런 세월이 나한테 왜 왔나 개인한테 주는 것들이 지금까지 트라우마가 있어요. 

처음 시작할 땐 어릴 때였기 때문에 조그마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책이나 보자 그러고 있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막 찾아와서 술도 사 오고 커피도 마시고, 알아서 돈을 놓고 가는 거에요. 그래서 그거를 처음에는 장사라는 것도 모르고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까 우연하게 이렇게 되었네요.

여기 가게를 얻게 된 게 아마 나무 요일, 목요일쯤이었을 거라고 제가 기억해요. 가게 이름이 세 글자가, 아니 한 글자가 좋을까? 다섯 글자가 좋을까? 여러 고민을하다가 ‘나무요일’이 되었어요.

저는 인테리어로 나무로 된 소품들이 많아서 나무 요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 이름에 나무(木)가 들어가기도 하고, 실제로 인테리어도 나무가 많이 사용되었죠.

인테리어사진

가게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너무 예쁜데 이런 인테리어 소품은 어디서 구매하신건가요? 인테리어에도 대표님의 의도가 들어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이 곳을 계약할 때는 이 공간이 비어 있었는데 한 달 동안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라서 그냥 비어있는 대로 뒀어요. 그러다가 건축하는 선배에게 인테리어를 부탁하고 싶은거에요.

근데 건축하는 사람한테 인테리어 부탁하는 거 조금 그렇잖아요.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부탁해서 저인걸 숨기고 물어봐달라고 했죠.(웃음) 그렇게 인테리어를 해주기로 하고, 날짜를 잡아서 3월에 만났어요.선배가 딱 와서 공간을 보더니 창문을 다 막고 시계를 없애서 밖이 어두운지 밝은지 알 수 없게 만들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시절에는 창문이 없는 가게가 별로 없고, 요즘에나 그런 인테리어를 한 가게 가 있는데 미리 예상을 하신걸까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인테리어에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인테리어를 맡기고 한달 지나서 딱 한 번 가게를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고 두 명이 중간에 진흙더미 하나를 놓고 미끄러운 합판에다가 그 진흙을 천장에 던지고 있는거에요. 그 다음 날 오면 진흙이 떨어지고 흔적 남은 거에다 또 던져서 붙이고, 그걸 한 달 동안 했대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 26년동안 이게 떨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가장 놀랐던 게 의자예요. 이 의자를 대장장이가 하나하나 만들었는데, 의자가 좁은 가게에 엄청 많은데도 의자의 살이 얇고, 막히는 게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아요.

또 하나는 테이블끼리 시선이 겹쳐지지가 않아요. 그건 여기에서 일하면서 나중에 알았어요. 시선이 안 겹쳐서 사람들이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구나. 

그리고 이 파티션이, 이거 나무가 하나가 이게 대단한 거더라고요. 시선을 분산시키고 분할시키는 게 재밌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실증을 못 느껴요. 가게에 대한.

책장사진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그렇네요. 그리고 가게에 책이 정말 많아요.

책이요? 네. 사람들이 다 놓고 간 거예요.(웃음)

매월 세 번째 목요일에는 나무요일 책 모임이 열리는데, 대표님과 상관이 없이 고객님들끼리 만든 모임이더라고요. 이러한 모임이 어떻게 생기게 된 건가요?

우리 집에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하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모임을 통해서 남자친구를 사귀려고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임을 두 번 열었는데, 두 번다 그 친구 혼자 왔어요. (웃음) 근데 그 친구가 대단한 거는 꿋꿋하게 자기가 책을 갖고 온 걸 다 보고 가요. 아주 똑똑하고 매력 있는 친구예요.

···

한 곳에서 오랫동안 운영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으셨을까요?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IMF때가 가장 어려우셨을까요?

아니요. 그때보다 더 힘들 때가 많았죠. 제가 가게에서 술이나 그런 거를 팔면서 자리에 가져다 주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사장과 손님은 동등하고, 손님은 무조건 적인 왕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 이렇게 된 게 술 취한 사람들 때문이었어요.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이 갖다주면 무언가를 갖다 준다는 행위를 좋은 의미로 봐주면 감사할 텐데, 그렇지 않은 소수의 몇 분들이 있어서 일을 도와주는 친구들에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술은 직접 꺼내서 먹는 시스템으로 하고 있어요. 손님들이 정말 다행히도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하죠.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되게 많은 인연을 만났다고 하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지금도 연락을 해요. 그 친구가 가슴에 항상 남아 있는 친구죠.

또 하나는 눈에, 가슴에 밟히는 제가 예전에는 이 에서 일을 하고 잠도 잤어요. 밤에 가게 일이 끝나면 판을 만들어서 의자를 붙여 놓고 위에서 잤어요.

그런데 이제 겨울에는 자기 전에 너무 추우니까 소주 한 잔에 간단히 안주거리를 구워서 먹으려고 하면 딱 가게 문을 열고 광석이가 들어와서 종로2가에 설렁탕 집에 나를 끌고 가요. 나도 돈이 없었지만, 걔도 돈이 없는 건 똑같았는데 나를 데리고 가서 밥 한 끼를 먹고 다시 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내 자리에 자려고 누워있어요. 그리고 아침에 보면 가고 없어요. 

그 녀석을 사실 내가 한 몇 년을 안 만났던 적도 있어요. 그 친구가 하도 유명해지기도 했고, 나는 힘들어서 대학로에서 한 2년 정도 숨어 살았거든요. 지하에서 제가 사진을 좋아해서 새벽에 사진 찍고, 아르바이트로 흑백 사진 현상하고 인화를 했어요. 그거를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광석이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어요.

“형" 하고 부르는 소리에, 처음에는 나라고는 생각 안하고 지나치려는데 한번 더 “형"하고 부르는거에요. 또 한 번 “형” 부르더니 내 손을 딱 잡는데, 씩 웃는 얼굴로 저에게 처음 한 이야기가 지금도 가장 가슴이 아프고 마음에 남아요. “형 나 돈 많이 벌었어, 나 홍대 앞에다 3층짜리 건물 샀어.”

그 얘기 들으면서 길 건너편에 카페에 가는데, 거기까지 이십 미터도 안 돼요. 근데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하느라 카페를 가는 데 삼십 분이 걸렸어요. 카페에 들어가서도 커피 한 잔 먹는 동안 싸인 종이가 계속 쌓이는데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랬나 싶어요. 그렇게 되기까지 광석이의 마음의 아픔을 내가 많이 알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 친구예요. 항상 가슴에 좀 짠하고 되게 힘들게 살았던 친구거든요. 

이 공간이 생기고, 그 친구가 간간이 저녁 때 오거나 그러면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노래를 불러줘.

“내가 뭐라 그랬어 부르지 마. 여기 와서까지 노래를 불러. 얘기해”

그러면 광석이가 씩 웃으면서 기타를 이렇게 뒤집어서, 씨의 하는 노래가 있어요. 한번 나중에 한번 들어보세요.

그거 한 소절을 두들기면서 딱 들려줬어요.

그 장면이 항상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남아. 머리에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 장면이. 소주나 한 잔 마시고.




먼저 떠나보낸 친구를 회상하며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친구에 대한 마음이 슬프고 아리게 전해졌다. 한편으론 변치 않는 공간에서 여전히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숨결이 살아 숨쉬기 때문에 이곳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장사진

인도 여행을 자주 다녀오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네, 작년에도 인도를 가려고 했었는데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못 갔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인도를 가려 했던 이유가 오랜만에 내가 묵었던 곳이 어떻게 변했나 안 변했나 도 궁금했고, 그리고 인도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려고 했어요. 되게 좋아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 어르신이 계신데 그분이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못가봐서 뵙고 싶어서 가려고 했어요.

올해 인도를 갔을 땐 10년 전에 내가 묵었던 방에 묵었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이불까지도. (웃음)

여행을 가셔서 새로운 친구분들도 사귀시는 건가요?

인도로 여행 가는 우리나라 친구들이 되게 많잖아요. 지금이야 뭐 인터넷이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서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여행이 가능하지만, 우리 다닐 때는 하나하나가 다 새로운 거였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한 지역으로 넘어가는 게 모험이었어요. 그래서 두려워서 못 가는 친구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여행하다가 만나는 사람 중에 저 사람이면 괜찮겠다싶으면 그사람을 쫓아가는 경우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됐죠. 지금도 서울에서 간간히 만나고 있어요.

인도가 굉장히 독특한 곳이잖아요.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을 서울에서 만나면 기분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근데 똑같아요. 그 친구들은 아직도 여전해. 서울에서도 그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내가 그걸 봤기 때문에 그 친구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나는 그거를, 그 본 마음을 알아. 안다고 생각을 해요. 그게 착각일 수 있지만, 나는 그때 그 모습을 항상 봐요. 인도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게 있어요.

사실 사업을 하면서 시간을 내서 여행을 다니기가 참 어려운데 이렇게 자주 다니시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여행을 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차피 결혼도 못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다 하진 못하니까 여행이라도, 일 년에 한 달이라도 원만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죠.

중간사진

음식을 직접 다 만들어 주시잖아요. 커피나 와인, 음식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따로 공부를 하신 건가요?

원래는 전혀 몰랐어요. 우리나라에 와인, 에스프레소 들어온 게 얼마 안 됐어요. 계속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면서 공부를 했어요. 특히 저는 비싼 여행을 하지 않아서 귀족들이 먹었던 음식들이 아니라 평민 아니면 아주 서민들이 먹었던 음식을 주로 접했는데, 어떤 때는 음식을 하려고 일부러 좋은 호텔이나 아니면 그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데 가서 정통 음식을 먹어보죠. 

아, 그래서인지 음식이 정말 다 맛있었어요.(웃음) 요즘엔 국어국문과에서 공부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부를 시작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코로나 때문에 시작했어요. 가게에 사람이 안 오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래서 내가 아침서부터 장사를 할 수는 없잖아요. 맨날 하듯이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에 문 열어서 아홉 시까지는 하려는 데 가게 문을 안 열기는 그렇고 계속 와서 놀았어요. 

그래서 놀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깐 뭐라도 배울까 해서 시작했어요. 고전은 싫지만 현대 문학도 재밌으니까 한번 해볼까 하고 했는데 어렵더라고요.

국어국문학과 말고 고민하셨던 과가 또 있으세요?

영상 미디어 학과요. 영화 하나 찍고 싶거든요. 영화 과정 찍는 과정도 재밌고, 고통스럽지만 나한텐 재밌게 보였어요. 축제 같은 느낌도 있어요. 주변에 영화 찍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분을 보면 즐거웠거든요. 그래서 이다음에는 다시 학사 편입해서 미디어 영상학과에 들어가 배워보고 싶어요.

뒷모습

청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고민을 해봐도 계속 떠오르고, 그 일이 하고 싶다고 느껴지면 주저하지 않고 시작하면 좋겠어요. 도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해요. 가령 후회를 한다고 해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게를 운영하는 게 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에요. 이게 해야 될 일처럼 의무감으로 가게 문을 연다면 안 열었을 거예요.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나무요일은 알 수 없는 매력과 편안함이 존재했다. 그런 매력은 인테리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지키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온다고 생각한다.

슬픔과 그리움, 기쁨과 감사함까지 수많은 감정들이 담긴 대화를 나누며 나는 한 번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무요일이 지금의 자리에서,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든든하게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라본다.



Editor : 서연지





이욱

Inter-view, 2023-07-12

프로필사진

"나무요일 대표 이욱"

아이띵소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오면 함께 꼭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을 가면 모든 사람이 그곳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곳은 아이띵소 직원들이 모두 애정 하는 공간이며, 나도 너무 애정 하는 공간인 이다.

어두운 가게에 반짝이는 촛불과 곳곳에 붙어있는 메모,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인테리어… 나는 아직도 새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나무요일에서 대표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볼수록 대표님의 살아오신 삶이 궁금하여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사실 한 번에 쉽게 승낙을 받은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외적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시다며 처음엔 고사하셨지만, 끈질긴 구애에 결국 허락해 주셨다. 나무요일의 첫 인터뷰라니! 우리는 벅찬 기대감과 설레는 긴장 속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입구

안녕하세요.(웃음)

오셨어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제가 커피 좀 드릴게요.

오 저희 마시고 와서 괜찮습니다.

그래도 한 번 마셔봐요. 맛있어요.

커피사진

인터뷰를 준비하는 사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내려주셨다.
항상 뭐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마음에 또 한 번 감동했다.

꽤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운영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언제 처음 문을 여셨나요? ‘나무요일'이라는 이름도 굉장히 독특한데 특별한 뜻이 있는 걸까요?

나무요일을 시작한 건 IMF 일어난 해에 5월 말일 날 시작을 했어요. 

그런 줄도 몰랐죠. 그래서 한 5개월 동안은 되게 재밌게 살았는데 그 당시부터 3년 동안 너무 많이 힘들어서 그 해를 기억하고 싶진 않아요. 솔직하게 그런 세월이 나한테 왜 왔나 개인한테 주는 것들이 지금까지 트라우마가 있어요. 

처음 시작할 땐 어릴 때였기 때문에 조그마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책이나 보자 그러고 있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막 찾아와서 술도 사 오고 커피도 마시고, 알아서 돈을 놓고 가는 거에요. 그래서 그거를 처음에는 장사라는 것도 모르고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까 우연하게 이렇게 되었네요.

여기 가게를 얻게 된 게 아마 나무 요일, 목요일쯤이었을 거라고 제가 기억해요. 가게 이름이 세 글자가, 아니 한 글자가 좋을까? 다섯 글자가 좋을까? 여러 고민을하다가 ‘나무요일’이 되었어요.

저는 인테리어로 나무로 된 소품들이 많아서 나무 요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 이름에 나무(木)가 들어가기도 하고, 실제로 인테리어도 나무가 많이 사용되었죠.

인테리어사진

가게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너무 예쁜데 이런 인테리어 소품은 어디서 구매하신건가요? 인테리어에도 대표님의 의도가 들어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이 곳을 계약할 때는 이 공간이 비어 있었는데 한 달 동안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라서 그냥 비어있는 대로 뒀어요. 그러다가 건축하는 선배에게 인테리어를 부탁하고 싶은거에요.

근데 건축하는 사람한테 인테리어 부탁하는 거 조금 그렇잖아요.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부탁해서 저인걸 숨기고 물어봐달라고 했죠.(웃음) 그렇게 인테리어를 해주기로 하고, 날짜를 잡아서 3월에 만났어요.선배가 딱 와서 공간을 보더니 창문을 다 막고 시계를 없애서 밖이 어두운지 밝은지 알 수 없게 만들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시절에는 창문이 없는 가게가 별로 없고, 요즘에나 그런 인테리어를 한 가게 가 있는데 미리 예상을 하신걸까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인테리어에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인테리어를 맡기고 한달 지나서 딱 한 번 가게를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고 두 명이 중간에 진흙더미 하나를 놓고 미끄러운 합판에다가 그 진흙을 천장에 던지고 있는거에요. 그 다음 날 오면 진흙이 떨어지고 흔적 남은 거에다 또 던져서 붙이고, 그걸 한 달 동안 했대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 26년동안 이게 떨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가장 놀랐던 게 의자예요. 이 의자를 대장장이가 하나하나 만들었는데, 의자가 좁은 가게에 엄청 많은데도 의자의 살이 얇고, 막히는 게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아요.

또 하나는 테이블끼리 시선이 겹쳐지지가 않아요. 그건 여기에서 일하면서 나중에 알았어요. 시선이 안 겹쳐서 사람들이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구나. 

그리고 이 파티션이, 이거 나무가 하나가 이게 대단한 거더라고요. 시선을 분산시키고 분할시키는 게 재밌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실증을 못 느껴요. 가게에 대한.

책장사진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그렇네요. 그리고 가게에 책이 정말 많아요.

책이요? 네. 사람들이 다 놓고 간 거예요.(웃음)

매월 세 번째 목요일에는 나무요일 책 모임이 열리는데, 대표님과 상관이 없이 고객님들끼리 만든 모임이더라고요. 이러한 모임이 어떻게 생기게 된 건가요?

우리 집에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하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모임을 통해서 남자친구를 사귀려고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임을 두 번 열었는데, 두 번다 그 친구 혼자 왔어요. (웃음) 근데 그 친구가 대단한 거는 꿋꿋하게 자기가 책을 갖고 온 걸 다 보고 가요. 아주 똑똑하고 매력 있는 친구예요.

···

한 곳에서 오랫동안 운영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으셨을까요?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IMF때가 가장 어려우셨을까요?

아니요. 그때보다 더 힘들 때가 많았죠. 제가 가게에서 술이나 그런 거를 팔면서 자리에 가져다 주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사장과 손님은 동등하고, 손님은 무조건 적인 왕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 이렇게 된 게 술 취한 사람들 때문이었어요.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이 갖다주면 무언가를 갖다 준다는 행위를 좋은 의미로 봐주면 감사할 텐데, 그렇지 않은 소수의 몇 분들이 있어서 일을 도와주는 친구들에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술은 직접 꺼내서 먹는 시스템으로 하고 있어요. 손님들이 정말 다행히도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하죠.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되게 많은 인연을 만났다고 하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지금도 연락을 해요. 그 친구가 가슴에 항상 남아 있는 친구죠.

또 하나는 눈에, 가슴에 밟히는 제가 예전에는 이 에서 일을 하고 잠도 잤어요. 밤에 가게 일이 끝나면 판을 만들어서 의자를 붙여 놓고 위에서 잤어요.

그런데 이제 겨울에는 자기 전에 너무 추우니까 소주 한 잔에 간단히 안주거리를 구워서 먹으려고 하면 딱 가게 문을 열고 광석이가 들어와서 종로2가에 설렁탕 집에 나를 끌고 가요. 나도 돈이 없었지만, 걔도 돈이 없는 건 똑같았는데 나를 데리고 가서 밥 한 끼를 먹고 다시 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내 자리에 자려고 누워있어요. 그리고 아침에 보면 가고 없어요. 

그 녀석을 사실 내가 한 몇 년을 안 만났던 적도 있어요. 그 친구가 하도 유명해지기도 했고, 나는 힘들어서 대학로에서 한 2년 정도 숨어 살았거든요. 지하에서 제가 사진을 좋아해서 새벽에 사진 찍고, 아르바이트로 흑백 사진 현상하고 인화를 했어요. 그거를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광석이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어요.

“형" 하고 부르는 소리에, 처음에는 나라고는 생각 안하고 지나치려는데 한번 더 “형"하고 부르는거에요. 또 한 번 “형” 부르더니 내 손을 딱 잡는데, 씩 웃는 얼굴로 저에게 처음 한 이야기가 지금도 가장 가슴이 아프고 마음에 남아요. “형 나 돈 많이 벌었어, 나 홍대 앞에다 3층짜리 건물 샀어.”

그 얘기 들으면서 길 건너편에 카페에 가는데, 거기까지 이십 미터도 안 돼요. 근데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하느라 카페를 가는 데 삼십 분이 걸렸어요. 카페에 들어가서도 커피 한 잔 먹는 동안 싸인 종이가 계속 쌓이는데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랬나 싶어요. 그렇게 되기까지 광석이의 마음의 아픔을 내가 많이 알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 친구예요. 항상 가슴에 좀 짠하고 되게 힘들게 살았던 친구거든요. 

이 공간이 생기고, 그 친구가 간간이 저녁 때 오거나 그러면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노래를 불러줘.

“내가 뭐라 그랬어 부르지 마. 여기 와서까지 노래를 불러. 얘기해”

그러면 광석이가 씩 웃으면서 기타를 이렇게 뒤집어서, 씨의 하는 노래가 있어요. 한번 나중에 한번 들어보세요.

그거 한 소절을 두들기면서 딱 들려줬어요.

그 장면이 항상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남아. 머리에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 장면이. 소주나 한 잔 마시고.




먼저 떠나보낸 친구를 회상하며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친구에 대한 마음이 슬프고 아리게 전해졌다. 한편으론 변치 않는 공간에서 여전히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숨결이 살아 숨쉬기 때문에 이곳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장사진

인도 여행을 자주 다녀오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네, 작년에도 인도를 가려고 했었는데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못 갔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인도를 가려 했던 이유가 오랜만에 내가 묵었던 곳이 어떻게 변했나 안 변했나도 궁금했고, 그리고 인도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려고 했어요. 되게 좋아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 어르신이 계신데 그분이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못가봐서 뵙고 싶어서 가려고 했어요.

올해 인도를 갔을 땐 10년 전에 내가 묵었던 방에 묵었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이불까지도. (웃음)

여행을 가셔서 새로운 친구분들도 사귀시는 건가요?

인도로 여행 가는 우리나라 친구들이 되게 많잖아요. 지금이야 뭐 인터넷이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서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여행이 가능하지만, 우리 다닐 때는 하나하나가 다 새로운 거였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한 지역으로 넘어가는 게 모험이었어요. 그래서 두려워서 못 가는 친구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여행하다가 만나는 사람 중에 저 사람이면 괜찮겠다싶으면 그사람을 쫓아가는 경우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됐죠. 지금도 서울에서 간간히 만나고 있어요.

인도가 굉장히 독특한 곳이잖아요.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을 서울에서 만나면 기분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근데 똑같아요. 그 친구들은 아직도 여전해. 서울에서도 그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내가 그걸 봤기 때문에 그 친구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나는 그거를, 그 본 마음을 알아. 안다고 생각을 해요. 그게 착각일 수 있지만, 나는 그때 그 모습을 항상 봐요. 인도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게 있어요.

사실 사업을 하면서 시간을 내서 여행을 다니기가 참 어려운데 이렇게 자주 다니시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여행을 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차피 결혼도 못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다 하진 못하니까 여행이라도, 일 년에 한 달이라도 원만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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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직접 다 만들어 주시잖아요. 커피나 와인, 음식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따로 공부를 하신 건가요?

원래는 전혀 몰랐어요. 우리나라에 와인, 에스프레소 들어온 게 얼마 안 됐어요. 계속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면서 공부를 했어요. 특히 저는 비싼 여행을 하지 않아서 귀족들이 먹었던 음식들이 아니라 평민 아니면 아주 서민들이 먹었던 음식을 주로 접했는데, 어떤 때는 음식을 하려고 일부러 좋은 호텔이나 아니면 그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데 가서 정통 음식을 먹어보죠. 

아, 그래서인지 음식이 정말 다 맛있었어요.(웃음) 요즘엔 국어국문과에서 공부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부를 시작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코로나 때문에 시작했어요. 가게에 사람이 안 오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래서 내가 아침서부터 장사를 할 수는 없잖아요. 맨날 하듯이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에 문 열어서 아홉 시까지는 하려는 데 가게 문을 안 열기는 그렇고 계속 와서 놀았어요. 

그래서 놀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깐 뭐라도 배울까 해서 시작했어요. 고전은 싫지만 현대 문학도 재밌으니까 한번 해볼까 하고 했는데 어렵더라고요.

국어국문학과 말고 고민하셨던 과가 또 있으세요?

영상 미디어 학과요. 영화 하나 찍고 싶거든요. 영화를 찍는 과정도 재밌고, 고통스럽지만 나한텐 재밌게 보였어요. 축제 같은 느낌도 있어요. 주변에 영화 찍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분을 보면 즐거웠거든요. 그래서 이다음에는 다시 학사 편입해서 미디어 영상학과에 들어가 배워보고 싶어요.

뒷모습

청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고민을 해봐도 계속 떠오르고, 그 일이 하고 싶다고 느껴지면 주저하지 않고 시작하면 좋겠어요. 도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해요. 가령 후회를 한다고 해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게를 운영하는 게 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에요. 이게 해야 될 일처럼 의무감으로 가게 문을 연다면 안 열었을 거예요.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나무요일은 알 수 없는 매력과 편안함이 존재했다. 그런 매력은 인테리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지키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온다고 생각한다.

슬픔과 그리움, 기쁨과 감사함까지 수많은 감정들이 담긴 대화를 나누며 나는 한 번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무요일이 지금의 자리에서,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든든하게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라본다.



Editor : 서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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